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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2019.07.05

     

     





    존경하는 삼척시민 여러분!
    김명숙 의원입니다.

     

    먼저, 본 의원에게 5분 자유발언의 기회를 주신
    이정훈 의장님과 동료의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본의원은,
    우리 민족의 역사서인 동시에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의
    사상과 얼을 기리기 위하여,

    죽서루 경내에 <제왕운기 저술 기념 표석>을 건립할 것과
    <이승휴 선생의 국가표준영정>을 제작하고

    또한, 미로 천은사 이승휴 유허지 주변에
    <이승휴 민족 역사관> 건립 및
    <고려시대의 정원유적지>를 발굴하여, 재조명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삼척시장님, 동료의원 여러분, 그리고 삼척시민 여러분!
    이승휴 선생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민족의 역사를 세우기 위한 이승휴 사상 역사특강을 열고,
    이승휴 선생에 대한 연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승휴 민족 역사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승휴 선생은 서사시 『제왕운기』를 지어
    국조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역사의 근거와
    최초로 발해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켜,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의 야욕을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 삼척시는 독립된 민족 역사와 혼을 일깨워준
    이승휴 선생의 정신을 기려야 할 의무와 더불어,
    향토문화 유적의 보존ㆍ전승 차원에서도
    우리시에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시 대표 문화재인 보물 제213호 죽서루에는
    조선중기시대의 문인 “송강정철의 가사의 터” 기념 표석이 1991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고려시대 삼척 사람인 이승휴 선생의 흔적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죽서루에서
    찾아볼 수 없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삼척이 『제왕운기』저술의 고장이라는
    팻말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신라시대의 무인 - “동해왕 이사부 장군”과
    고려시대의 문인 -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
    이 두 분은 삼척의 역사ㆍ문화정신을 지탱하는
    양대 산맥이며 대한민국을 지켜온 큰 인물입니다.


    삼척에 문ㆍ무인이 함께 계셨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512년 우산국을 신라의 영토로 편입시킴으로써
    동해안 해상권을 장악했던 신라장군 이사부
    국가표준영정은 2011년 제83호로 지정되어,

    나무사자와 함께 문화 콘텐츠 개발사업을 다각화하고
    해양문화·관광 분야 발전과 역사명소 가꾸기 등의 사업을
    활발히 촉진시켜 나가고 있어서 너무도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진즉 삼척이 외가이며,
    고려후기의 탁월한 사상가이자 문장가이며,
    올곧은 정치가이자 탁월한 외교관이었던,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고향 삼척에서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삼척시민의 역사문화에 대한 인식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부끄러움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승휴 선생의 자는 ‘휴휴(休休)’,
    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입니다.

    고려충렬왕 때 고쳐야 할 폐단 10개조를 올려 파직된 후
    어머니가 홀로 생활하고 계시는 두타산(頭陁山) 구동(龜洞)으로 들어와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며 머물렀습니다.

     

    이승휴선생은 고려가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 때마다
    나라 안팎으로 돌아다니며 왕성히 활동하였지만,
    그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 경우는 극히 적었고,

    또한,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화되는 과정에,
    원에 아부하며 고려를 위기에 빠뜨리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여, 구국 충정의 심정으로 상소를 올렸지만,
    오히려 상소를 올렸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수차례 반복하여 파직 당하였습니다.

     

    충렬왕의 분노를 피해 다시 두타산에 은거하면서,
    고려의 국제적 위상이 하락하고
    고려인들이 이합집산 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역사의식을 바로 잡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조정에 복귀하지 못한 채 저술활동에만 전념하였으며,
    『제왕운기(帝王韻紀)』는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이 시기에 탄생한 대표적 역작입니다.


    본 의원은
    『제왕운기(帝王韻紀)』의 간행과
    그로인해 한국사학계에 끼친 공헌,
    이승휴의 국가의식 전개과정,
    이승휴의 역사관, 이승휴의 선비정신을,
    너무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삼척에서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안거사 이승휴가 우리 한민족의 역사서인 동시에
    대역사 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두타산 구동은,
    자타가 공인하는 ‘제왕운기(帝王韻紀)의 산실(産室)’입니다.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두타산 아래의 천은사(天恩寺)가 바로, 그 곳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일연선사의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함께
    이승휴선생의 제왕운기는 고려의 3대 역사책입니다.


    제왕운기의 목판본 상, 하 2권은
    현재 보물 41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는 우리가 중국과 다른 단일민족임을 천명하였으며,
    고구려와 발해가 우리 민족임을 역설하였습니다.


    미로 천은사는,
    민족주체성을 주창한 역사의 산실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의 격을 높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사찰 전체에 대한 본격적인 복원과 정비사업이
    추진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후세들에게
    애국심 함양과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어야 마땅한 것 입니다.

     

    또한, <고려시대의 정원유적지>를 발굴하여
    이승휴유허지 주변을 개발, 관광자원화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승휴선생은 이곳에 기거 하시면서
    경물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거닐고 의탁하기가 편리하니 그 아름다움을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고 하여, ‘보광정’을 지었고,

    ‘보광정’ 아래쪽 네모진 우물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연꽃과 큰 은어를 넣으니 연잎사이로
    은빛 조각이 오락가락 하였다고 했습니다.


    어찌 내가 고기의 즐거움을 모르겠는가에서 따온 “지락당”


    도연명의 귀거래사 심용슬지이안(審容膝之易安) 이라는
    시수에서 따온 “용안당”


    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오르는 샘이 있는 곳에 우물을 파,
    소동파의 전중시 시구를 따온 ‘표음정’ 이 있습니다.

     

    천은사에는 돌확(맷돌)이 퍼렇게 이끼에 둘러싸여 있는데, 목조의 능에 제사를 지낼 때 이곳에서
    두부를 만들었던 “조포사” 였음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1899년 이성계 4대조인 목조의 원당사찰로 지정되어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하여 “간장사”에서 “천은사”로 이름 바뀐 사찰, 이승휴 유허지 일원은

    용안당을 제외하면 600여년이 흐른 지금,
    이승휴 선생이 이름을 지은 다른 경물들은
    세월의 이끼에 덮혀 자취조차 찾기 힘들어 지고 있어,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루속히 더 훼손되기 전에, 더 사라지기 전에,
    복합유적, 연못터, 가마터(청자 도요지), 사적 등이 있는
    “고려시대 정원”을 발굴해야 합니다.


    오늘날, 청소년의 역사인식은 국·영·수 중심의 학교교육 입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교육 현실에서,
    사회는 청소년들이 교과서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 둘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입시에서 역사는 소외되어 왔고,
    몇 시간 안 되는 역사 교육은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 청소년의 역사 인식입니다.

     

    역사는 끊임없는 기록과 학습, 즉
    '공동의 기억을 지키려는 노력'에 의해서 진실로 남습니다.


    청소년의 역사인식 개선을 위해서라도 죽서루 경내에

    이승휴선생의 <제왕운기 저술 기념 표석> 설치,
    그리고 <이승휴선생의 국가표준영정> 제작,
    미로 천은사 이승휴유허지 주변에 <이승휴 민족 역사관> 건립 및 <고려시대의 정원유적지>를 발굴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합니다.

     

    무릉계 삼화사에서 1000 상자의 불경을 빌려와 읽었다는
    기록으로 동해시에서 동해사람으로 명명하며,
    동해문화원에서 이승휴선생의 사업을 선점하려고
    <역사문화연구회>를 결성하여 몇 년째 연구발표하며
    문화의 저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문화 컨텐츠는 선점하는 지자체가 우선입니다.

     

    우리는 이사부장군 사업을 선점하려 강릉과 시비를
    가리던 뼈아픈 전처를 밟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동해바다가 넘실거리는 바닷가 마을 삼척이,
    이승휴 선생으로 인해 역사의 고장으로 재조명되기를,
    역사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삼척을 간절히 바라며,
    자유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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